여행 후기

[더유럽투유D코스1기] 도저히 여행을 갈 상황이 아니었다. - 2

The유럽 To You D코스

나는 분명 후기를 통해서 이 여행을 신청할지 말지 궁금해서 들어온 건데

이 친구는 아까부터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지?

싶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미안한데 정말 기억나는 게 이런 뜬구름들 밖에 없다.

아, 내가 예상한 코스와 날씨가 맞아떨어졌던 게 기억나

아, 내가 준비한 숙소의 형태와 코치였어서 너무 편했던 게 기억나

아, 내가 대비했던 조원들과 운영진이어서 여행이 무난했던 게 기억나

아, 내가 걱정했던 소매치기, 바가지, 인종차별이 없어서 인상 깊어

아, 내가 원했던 사진 스폿에서 사진 예쁘게 잘 나와서 인스타에 올려서 좋아요 많이 받아서 추억으로 남았어

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대로 돼서 잊지 못할 여행이 됐어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다.

처음 탄 유럽 기차가 느닷없이 멈춰서 전기 충전한다고 야경투어에 늦을 뻔한 순간,

무료인 줄 알았던 음식이 비싸서 카드와 내 마음이 고생했던 순간,

갈까 말까 망설이던 우리에게 다른 조원들이 먼저 가자고 손 내밀어 마주했던 절경을 본 순간,

평소에 제정신이었다면 발길 닿을 일 없었던 액티비티 티켓을 끊기 위해 삼복더위를 버틴 순간,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나중엔 티셔츠 다 적시게 가방을 품 안에 품고 있던 순간,

그 나라 문화를 몰라서 옆자리 할아버지한테 혼나고 부끄러웠던 순간,

피곤해서 팔 올릴 힘도 없는데 찍어달라길래 대충 눌렀던 셔터에서 인생 샷 건진 순간,

밤에 숙소 돌아와서 하루 종일 마신 맥주를 캔으로 다시 맛보자면서 김 자반을 뜯는 순간,

신나서 공지 톡방 안보다가 시간 약속 어겨서 미안했던 순간.

이 모든 추억을 함께한 사람들과 부다페스트 호텔 한가운데 모여서 다음 날 헤어진다는 생각에 괜히 차오르는 눈시울을 숨겼던 순간.

이쪽이 훨씬 재밌을 것 같지 않나 싶다.

20대는 돌아오지 않으니 즐겨야 한다는 도시 괴담을 믿지 않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공식을 믿어 살아가던 나는 중요한 순간에 떠나버린 여행에서 내가 미친 듯이 찾아 헤매이던 숲속을 멀리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기념품으로서는 조금 귀한 나의 목적지를 품에 여미고 돌아오게 되었다.

걱정한 만큼 망가지지 않은 내 프로젝트를 다시 손보고 떨어진 심사 준비 자료들을 휴지통에 넣었지만 꽤나 행복한 순간들이 다른 폴더에 있어서 나름 좋았다.

후기를 보고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후기 말고 자기 하루를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생각보다 하루가 메말랐다면, 생각보다 이번 학기가 엉망이었다면, 생각보다 성적이 안 나왔는데 생각보다 통장에 여유가 있다면 그냥 냅다 가버리는 거다.

아 몰라 난 젊으니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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